10년 전 나는 철부지 대학생이었다. 1999년 1월. 나는 아프리카에서 정체성에 대해 큰 혼란을 겪고 있을 시기였다. 대학을 입학하고 방종을 만끽하며 술과 담배로 찌들어 살던 당시 난 왜 대학에 들어갔는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른체 그저 술마시고 흥청망청 놀기에 바빴다. 동아리를 13개나 들어 온갖 동아리에서 술을 얻어마시고 다녔고, 학교 호수에서 헤엄치고, 기숙사 옥상에서 선배들에게 맞기도 하고, 매일 밤 필름이 끊기는 막가파 인생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1년을 살다가 난 어떤 이끌림에 따라 아프리카에 가게 되었고, 10년 전 오늘, 난 아프리카 캐냐에서 마사이들과 함께 있었다.

내 인생의 첫번째 터닝포인트.
 
한 여자아이가 배가 아프다며 우리 베이스로 찾아왔다. 의료봉사를 하고 있었던 우리는 내과, 외과, 이비인후과로 나누어 진료를 하고 있었다. 배가 아프다니 내과로 보냈지만, 내과 의사들이 그 아이의 옷 속의 배를 보는 순간 깜짝 놀라며 외마디를 질렀다. 아이는 겁을 먹고 울기 시작했고, 의사들은 실수했음을 깨닫고 얼른 아이를 안심시키며 외과로 보내었다. 외과에서 상처를 보고는 상태의 심각성을 알렸다. 다른 환자를 우선 대기시켜두고, 그 아이를 위해 모든 팀원들이 모였다.

그 아이의 상처는 화상에 의한 2차 감염이었다. 마사이 부족은 알다시피 유목민이다. 물을 찾아 유목을 하기 때문에 집을 지을 때 소똥으로 낮게 짖는다. 낮게 짖는 이유는 코끼리나 사자같은 맹수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고, 소똥으로 짖는 이유는 사람에게는 냄새가 안나지만, 맹수같은 야생동물들에겐 매우 심한 냄새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이는 배에 작은 화상을 입게 된다. 그냥 놔 두었으면 별 탈 없었을 작은 상처였지만, 소똥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아이들에게 그 작은 상처는 매우 심각한 상처가 될 수 있었다. 배가 간지러웠던 그 아이는 소똥이 묻은 손으로 배를 긁었고, 상처는 2차 감염이 되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왔을 때는 에일리언의 배처럼 흉측스럽게 변해있었다.

우선 깨끗하게 소독한 후 배 껍질에 붙어있는 검은 딱지들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조금만 건드려도 피가 철철 흘러넘쳤다. 가녀린 아이는 얼마나 아팠던지 10여명이 손과 발을 잡고 있는데도 고통속에 몸부림쳤다. 더러운 것들을 떼어내고 소독하고, 마이신을 뿌려준 후 붕대로 칭칭 감아주었다. 일단 응급처치 정도는 한 셈이다. 아이도 우리도 모두 지쳐있었다. 난 겁도 나고 불쌍하기도 하여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의사 형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어디론가 무리지어 간다. 막내였던 나는 형들따라 쫄래 쫄래 따라갔다. 형들은 곧 언쟁을 하기 시작했다. 논쟁의 주제는 바로 그 아이에게 마이신을 얼만큼 줄 것인가였다. 문제는 그 아이가 살아나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마이신을 다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쪽은 마이신을 다 주어서 한 생명이라도 살려야 한다는 것이었고, 또 한쪽은 다른 사람들도 마이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2주치만 주고 가자는 것이었다.

마이신을 다 주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의견은 2주치로는 어림도 없고 다시 2차 감염되어 생명조차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었기에 심각한 논쟁은 계속되었다. 결국 2주치만 주고 나머지 의료 봉사를 계속 하게 되었지만 나는 큰 충격에 쉽싸일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술마시고 펑펑 놀던 나. 내가 마신 술 한잔의 돈이 이 아이를 살릴 수 있는 마이신의 돈일 것이다. 깨끗한 물만 나와도 그 아이는 2주치 마이신만으로도 충분히 회복될 수 있다. 하지만 물 한잔이 없어 빗물을 받아먹는 곳이 그곳이었다. 닝닝하고 매스꺼운 빗물을 마셔보았는가? 커피를 잔뜩 넣고 끓여마셔야 그 정도이지 그냥 마시면 이질에 걸려 죽을 수도 있다. 병원은 있는데, 의사도 있는데, 간호사도 있는데... 약이 없는 그곳. 학교도 있는데, 선생도 있는데, 학생도 있는데... 교과서가 없는 그곳. 남자는 13살이면 3년간 마을 외곽을 지키며 그곳에서 살아야 하고, 여자는 13살이면 결혼을 할 수 있다. 일부다처제인 그곳은 결혼할 나이가 된 여자가 누군가에게 프로포즈를 받게 되면 그 사람의 부인이 되던가, 마을을 떠나던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결국 난 내 인생에 처음으로 이 질문을 던져보게 되었다. 누구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수도꼭지 틀면 콸콸 나오고, 집 밖에 병원이 즐비하고, 약국도 즐비한 곳에 만족하지 못한 체 불평하며 살아가고, 누구는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깨끗한 물 한잔 못마시고, 약이 없어 죽어가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이유가 있어서 존재하는 것일텐데 그 이유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리곤 사람은 도데체 왜 존재하는가? 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난 지금도 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은 내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고 있고, 의미있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10년 후에도 이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을 것이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의 나는 그때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변해있다. 그리고 당시 내가 원하던 모습과 일치해있다. 그 때 정한 비전은 아직 이루지 못했지만, 앞으로 10년 후 나는 그 비전을 이룬 모습이 되어있을 거라 믿는다.

10년 후의 나

10년 후에 난 학교를 세웠을 것이다. 그 학교의 이름은 경제적 자유 학교이다. 이 학교는 전세계 곳곳에 생겨나있고, 많은 사람들이 이 학교를 나온 후 경제적으로 자유하게 되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돈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고, 인생을 좀 더 풍요롭게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10년 후에도 세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사람의 자본화 뿐 아니라 정보의 자본화도 급속도로 이루어져 돈이 없으면 생각도 못하는 시대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곳곳에서는 자본의 재분배가 이루어질 것이며, 나 또한 그 부분에 있어서 일조를 하게 될 것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5천명을 먹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5천명에게 고기 잡는 법과 영원히 배고프지 않는 기쁜 소식을 전해 줄 것이다.  

비전 노트를 작성해보았습니다. 우선은 10년 전의 나와 10년 후의 나 부터 시작해보았는데 쓰고나니 정리가 잘 안된 것 같기도 하네요. 하지만 비전노트에는 정리되지 않은 글들을 적어나갈 생각입니다. 공개된 일기장 같은 느낌으로 제 생각을 자유롭게 기록해 나가려고 해요. 비전노트는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써오고 있습니다. 이 비전노트는 블로그에 남겨두기 위해 쓰는 것이고, 비전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알리고 싶어 공개합니다.

혹자는 비전을 사치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저 하루 하루를 만족하고 최선을 다해 살면 그 뿐이라 생각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전 목표점이 없으면 방황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작점과 목표점이 있어야 도화지에 무언가를 그릴 수 있는 것이니까요. 비전은 그림을 그려주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원하는 비전을 향해 가는 것에 그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0년 전 써놓은 비전노트를 펼쳐놓고 있으면 깜짝 깜짝 놀랍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많은 부분이 이루어져있으니까요. 심지어 결혼할 나이까지 맞춘 걸보면 10년 전에 미아리에 돗자리 깔았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때도 있습니다.

비전노트를 아직 만들지 않았다면 한번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어차피 밑져야 본전 아닌가요? ^^ 확언하건데 절대로 밑지지 않을 겁니다. 비전노트 지금 한번 만들어보세요~!
Posted by 이종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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